산청군 ‘민족의 소리’ 국악 르네상스 꿈꾼다
산청군 ‘민족의 소리’ 국악 르네상스 꿈꾼다
  • 경남포커스뉴스
  • 승인 2020.05.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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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 큰 스승 岐山 박헌봉 기리는 기산국악당

기산 선생 제자 최종실 명인 선봉장으로 나서

13년간 기산국악제전 열고 박헌봉국악상 제정

토요상설공연 정례화…국악 대중화·발전 선도

산청에 경남도립국악원 설치하자 주장도 나와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구미농악단이 공연중이다(제공=산청군)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에서 구미농악단이 공연중이다(제공=산청군)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던 국악과 민속악, 판소리 등 민족음악을 부흥시키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사람.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장을 역임한 인물.

국립극장 운영위원,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한국최초로 국악예술학교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지금의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창설, 근대 대한민국 국악의 이론을 정립하고 후학 양성에 물심을 다한 활동가.

우리민족의 얼과 정신이 스며 있는 창악(판소리)과 관련된 자료를 집대성한 ‘창악대강’을 집필·출간한 학자.

이는 모두 한 사람. 현재 우리나라의 국악 이론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 받는 국악계 큰 스승, 기산(岐山) 박헌봉 선생(1906~1977,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출생)을 설명하는 말이다.

◇민족의 얼 민속국악 부흥 이끌어 낸 岐山

기산 박헌봉 선생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906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서 태어났다.

1972년 선생이 ‘月刊 文化財¹’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명문을 자랑하던 밀양 박씨의 자손이었던 나는 나면서부터 ‘양반’으로 되어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엄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기산 선생이 국악, 엄밀히 말해 당시 민속악을 처음 접한 것은 두툼한 한서를 옆에 끼고 십여리 길 서당을 다니던 9살 무렵이었다.

선생은 당시에 대해 “보슬비를 타고 들려오는 이 애상적인 노래 소리는 주위 경치와 조화를 이루어 묘한 힘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 있었다. 그전에도 종종 초동들이 지게 발목을 두드리며 구성지게 부르는 노래를 듣고 속으로 흥겨워한 적은 있었으나 내가 입으로 따라 불러본 일은 이것이 처음 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게 국악에 마음을 빼앗긴 기산 선생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름난 명창과 명인이 많았던 진주를 왕래하며 가야금과 가야금병창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때가 18세 때의 일이었다.

기산 선생은 평생 동안 국악의 진흥을 위해 힘쓴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조선음악협회 조선악부에서 민족음악진흥을 꾀하다가 일제가 ‘춘향전’마저 일어로 공연하라 하자 단체를 해산 시켜버리기도 했다. 이후 광복이 되자 국악건설본부를 창설하기도 했다.

1960년에는 민속악 교육을 위한 최초의 사립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해 초대 교장을 역임했다. 이후 국립극장 운영위원, 한국 국악협회 이사장,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내며 국악 이론가이자 교육가로 국악 부흥에 헌신했다.

특히 해방 이후에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창악(판소리) 관련자료를 집대성해 ‘창악대강’을 출간하기도 했다.

기산 선생의 업적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국악예술고등학교 설립이다.

사실 기산 선생이 1960년 ‘국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향사 박귀희 명창을 비롯한 많은 국악인들과 함께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당시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할 당시 국립국악원을 모태로 하는 국립국악고등학교가 존재했다.

그러나 국립국악고등학교는 국악사(國樂士)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정악, 즉 궁정에서 연주되던 음악을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였다.

서민들의 애환을 담았던 판소리나 민요 등 민속음악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는 국립국악고등학교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박헌봉 선생을 필두로 박귀희 명창과 김소희 명창 등 수많은 국악인들이 마음을 합해 설립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는 민간학교이다 보니 당시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 설립은 물론 운영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헌봉 선생이 故 이병철 삼성회장과 친분이 있어 학교 운영이 어려울 때마다 매번 이병철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평생을 가시밭길 같은 국악 부흥의 길을 걸었음에도 기산 선생이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국을 다니면서 명창들의 민요를 녹음하고 채보하는 작업이었다.

기산 선생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300여곡에 이르는 민요와 명인 명창들의 창 200여곡이 음반에 담겼으며 이후 방송국과 국악학교 등을 통해 재현하는 기반이 마련됐다.

◇기산 선생 제자 최종실 명인 중심으로 기산국악당 활성화

산청군은 지난 2013년 우리나라 국악 부흥운동의 선각자 기산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선생의 고향인 단성면 남사예담촌 내에 기산국악당을 건립·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해 처음으로 기산국악제전위원회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협력해 전국의 젊고 재능있는 국악인들을 초청, 토요 상설 국악공연을 진행했다.

지난 2007년부터 산청한방약초축제 주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산국악제전의 최종실(現 학교법인 국악학원 이사장) 제전위원장이 총감독을 맡아 기산국악당에 상주하며 상설 국악공연의 우수성을 끌어올렸다.

최 명인은 5세 때 부친인 최재명 단장이 운영했던 삼천포 농악단에 입문했다. 12살이 되던 해인 1965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진주 삼천포 농악 시연 공연에 참가하며 본격적인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다양한 공연을 통해 실력을 쌓은 최 명인은 1978년 김덕수, 이광수, 故 김용배 명인과 함께 국내 최초로 ‘사물놀이 연주단’을 창단했다.

당시 사물놀이가 불러 일으킨 사물놀이 바람은 ‘신화’로 불린다. 최 명인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불과 1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전 세계 80개국을 돌며 국내외에서 4000회가 넘는 공연을 선보였다. ‘사물놀이’가 원조 한류라고 불리는 이유다.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타악과 교수를 지낸 최종실 명인은 상모놀이와 소고춤의 달인이다. 특히 그가 공연 때 마다 선보이는 자반뒤집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묘기다.

네 살박이 어린애였던 최 명인이 상모를 주면 울다가도 울음을 그쳤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산청군은 지난해 5월 기산국악당 상설 국악공연에 개막에 앞서 전야제 형식으로 기산 박헌봉 선생 추모 음악제를 열고 기산 소나무 명명식, 추모제례, 대밭 극장 공연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기산국악당 상설국악공연 정례화로 국악 대중화

산청군은 지난 2019년 5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단성면 남사예담촌 내 기산국악당에서 우리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상설 국악공연을 진행했다.

기산국악당 토요상설공연은 젊고 재능 있는 국악인들이 마음껏 끼를 선보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은 상설 국악공연을 정례화 해 매년 많은 국악인들이 찾는 ‘국악마을’로 성장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지난해 2월에는 기산국악제전위원회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가 공동으로 ‘국악영재 힐링캠프’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타악연희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주삼천포 12차 농악’을 전수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진주삼천포(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농악은 1966년 우리나라 최초로 농악부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속악이다. 기산 선생이 진주삼천포 농악의 무형문화재 지정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기산국악당은 지난 2009년부터 산청초등학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사물놀이 강습반을 운영하고 있다. 또 지난 2017년부터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가야금 무료강습반을 연중 운영하고 있다. 또 매주 2회 단성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방과후교실 가야금 강습반도 운영하고 있다.

◇경남도립국악원 산청에 설치 될까

산청군의 이 같은 움직임에 발맞춰 종합예술 전당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경남 도립국악원을 산청군에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산청군이 지역구인 박우범 경남도의원은 지난 2019년 6월 열린 제364회 경남도의회 정례회 제5차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국립국악원은 서울과 전남, 전북, 부산 등 전국 4곳에 설치돼 있지만 남부권에 편중 돼 있다. 또 도립국악원은 전북과 충남지역에서 운영 중이지만 경남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남에서도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음악을 후대에 계승 발전시키고 국악교육, 연주 및 보급, 창작활동 및 보존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도립 국악원의 건립이 필요하다”며 “도립국악원 건립 예정 부지로는 지리산 관문에 위치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인 남사예담촌과 전통한옥 체험마을을 활용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최종실 제전위원장은 “앞으로 매년 기산국악당에서 수준 높은 국악공연이 열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국악의 대중화와 함께 젊은 국악인의 양성에도 힘쓸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악계의 큰 스승이신 기산 박헌봉 선생의 고향 산청군에 경남도립국악원이 건립된다면 아주 뜻깊은 일일 것이다. 추진된다면 최선을 다해 산청이 국악의 성지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근 산청군수는 “기산 선생이 이루고자 하셨던 민족예술, 국악의 부흥과 계승에 우리 산청군이 앞장 서겠다”며 “우리 민족의 얼과 기개, 흥과 해학이 담긴 국악의 중심지가 우리군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1. 참고문헌 ‘月刊 文化財. 제2권 제6호 통권8호 (1972년 6월), pp. 38-50’ 중 ‘國樂運動半生記, 朴憲鳳’ 국내학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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