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구식 한국선비문화연구원장이 보는 남명사상
최구식 한국선비문화연구원장이 보는 남명사상
  • 편집자 주
  • 승인 2023.10.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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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구식 한국선비문화연구원장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어디로 갈지 방향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책을 즐겨 읽는다. 우리나라의 기적적인 발전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오래 고민하고 노력했다.
오는 20~21일 열리는 남명제의 시작은 국제학술회의다. 2년전 주제는 '동서양 문화의 핵심정신. 선비 사무라이 기사도정신 비교'였다. 초청장에 이렇게 썼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생이 된다고 한다. 어떤 위대한 성취도 출발은 하나의 생각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하나의 생각으로 출발했을까.
우리에게 선비정신이 있다면 유럽에는 기사도정신 일본에는 사무라이정신이 있다. 이런 핵심정신이 있었기에 각자 뛰어난 문명을 꽃피우게 되었을 것이다.
올해는 '남명사상, K-기업가정신의 뿌리'로 정했다. 애초에는 '남명사상과 K-기업가정신'으로 하려고 했다. 20세기 최고의 명저 중 하나로 꼽히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정신'에서 원용했다.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뿌리를 청교도윤리에서 찾으려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차원에서 기업가 정신의 뿌리를 남명사상에서 찾으려는 나름 야심찬 시도이다. 2년만에 제법 진도가 나간 셈이다.
기업가 정신 관련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중소기업협의회(ICSB) 김기찬 회장(가톨릭대 교수·경영학)과 아이만 타라비쉬 전회장이 '한국 기업가 정신의 원류''한국 기업가 정신과 남명사상'에 대해 발표한다.
이어 김영우 인제대 교수와 김덕환 경상대 교수가 '유교와 자본주의 그리고 기업가 정신''남명의 실학사상과 K-기업가 정신'에 대해 발표하고 정대율 경상대 교수가 이끄는 종합토론에는 싱가포르, 스위스, 베트남에서 비대면 참석한다.
남명의 학문은 동시대 다른 학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학문이란 백성들의 실제 삶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알기만 해서는 안되고 실천까지 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리학만 학문인 줄 알던 시절 남명은 불교와 노장은 물론 천문, 지리, 의약, 병법 등 백성에게 필요하면 무엇이든 가르쳤다. 남명의 어록을 보자.
"그림의 떡으로는 배가 안부르다""시장에 금은보화가 있지만 흥정만으로 자기 물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물뿌리고 비질하는 것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말하며 이름을 훔쳐 남을 속이려 한다""입으로만 천상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데 그들의 행실을 살펴보면 무지한 사람만도 못하다""학문은 고원한 것을 말하거나 문자를 기억하고 암송하는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자는 집집마다 있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천자가 입는 구장복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버선도 만들지 못한다"
먹고사는 문제, 요즘 말로 비즈니스라 할 만한 이런 말들은 지금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때는 남명 말고는 아무도 못했다. 못했다기 보다 관심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부와 권력에 명예까지 독점한 특권계급에서 독점적 언어인 한문으로 천도니 이기일원이니 이기이원이니 하면서 다른 계급의 접근 자체를 원천봉쇄하던 시절 하찮은 백성들 먹고사는 문제같은 시시한데 무슨 관심이 있었겠나.
남명의 말씀은 수백년동안 진주를 중심으로 제자 문중을 통해 전해졌다. 자본주의가 도입되기 전에는 따로 경제라 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남명의 말씀도 큰 변별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20세기 들며 자본주의가 도입돼 진주까지 전파됐다. 남명의 말씀과 자본주의가 처음 만난 것이다.
이 역사적 만남의 순간을 이렇게 상상하곤 한다. 남명말씀이 유증기(油蒸氣)처럼 진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자본주의라는 성냥 한개비를 긋는다. 즉각 대폭발이 일어난다. 삼성, LG, GS, 효성같은 대기업 창업자들이 한 도시에서 거의 동시에 등장한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국선비문화연구원 본관에는 큰 글씨로 남명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 현판이 붙어 있다. '학문은 실천을 통하여 그 빛을 발한다.' 백성에게 필요한 것이 전시(임진왜란)에는 의병이었다면 평시에는 기업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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